코르케의 〈바차타 센슈얼 탄생 설화〉 — 이 거대한 세계는 어떻게 시작되었나
지금 막 긴 여행 다녀와서 정신이 좀 없거든. 반말투 양해 요망~
우선 반말투 양해 요망~ 지금 막 긴 여행 다녀와서 정신이 좀 없거든. 그래도 코부지(바차타 센슈얼의 아부지 코르케의 줄임말) 썰을 어찌 안 풀 수 있겠어. 재밌게 읽어주고, 틀린 건 지적질해 주면 바로바로 고칠께. 그럼 시작~
문득 떠오르는 에피소드 하나.
"그건 왜 그렇죠?" — "코르케가 그렇다고 했거든요." (끗)
루이스 안드레아 워크샵이였나? 아마 그랬을거야. 어떤 질문을 했는데, 저게 댄서의 답이었어. 마치 더 이상의 부가 설명은 필요치 않다는 듯, 너무도 당연하다는 말투였어. 코르케는 과연 어떤 존재인걸까.

*ps. 춤의 동작이나 원리에 대해 댄서가 답변에 무책임했다는 의미는 절대 아니구. 질문 자체가 왜 그걸 그런 이름으로 불러요? 왜 그건 그렇게 정해지게 되었나요. 뭐 이런 류의 것 :)*
한국과의 끈끈한 관계 — 코르케 주디스의 세 번째 한국 방문
코르케 주디스가 2022년 12월 초 한국에 와. 이번이 세 번째 방문이야. 우선 지난 방문했던 행사를 한 번 보자. 2018년 5월 월드스타 바차타 페스티벌, 2018년 12월 센슈얼 투나잇 페스티벌.
물론 2017년 말 트루히 글로리아 한국 투어 때 당시 여친, 지금은 와이프인 글로리아를 응원하기 위해 깜짝 방문을 하긴 하셨지만, 그건 off the record의 시크릿 이벤트였어. 주디스도 없었지. 당시 나오미 빠에서 쉿- 절대 올리지 말라며 데모도 보여주시고 소셜도 춰주시고…

참으로 여친 사랑이 철철 넘치는 코부지셨어. 그리고 바로 바로!! 이 로맨틱한 성정이 바차타 센슈얼을 만들게 한 동력이 되기도 했지!

코르케 주디스(코주)의 첫 번째 방문은 다니엘 데지레(DD)와의 대결(?!)로 화제를 모았어. 행사가 열리던 시기가 손나리 선생님이 개최하시는 유서깊은 코리아 살사 바차타 콩그레스 기간과 겹쳤거든. 그 때 행사의 메인 댄서가 다니엘 데지레였고. 물론 데지레는 임신으로 못왔지만.
같은 주말에 세계 최고의 코주와 DD가 모두 서울에 있다니. 진짜 어이없고 고민되는 상황이었어. 대체 어디로 가야 하나… 난 결국 양쪽 패스를 모두 끊고 상황을 보기로 했지. 그리고 다니엘과 마리추(데지레 언니이자 맞사돈, 당시 데지레 대타)의 워크샵을 조금 듣다가 얼른 빠져나와 코주의 워크샵에 조인했어. 그리고 수업을 들으며 안도했던 기억이 나. 이걸 놓칠 뻔 했다니…
DD는 세계 최고의 센슈얼 댄서이고 센슈얼에 대한 로망과 욕망을 세계에 퍼뜨리게 만든 장본인이야. 하지만 티칭의 내용과 깊이 면에서 코주는 압도적이었어. 물론 그 때 데지레가 없기도 했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코주의 두 번째 한국 투어였던 센슈얼 투나잇 행사는 손나리선생님이 오거나이징하셨어. 콩그레스 때 겹쳤던 댄서를 그 해 연말 행사에서 다시 초대하신거야. 2018년 12월 21, 22일… 연말 분위기가 절정에 이르렀고, 모두의 센슈얼이 조금씩 무르익어 가던 때였지.

포스터 봐봐…. 이 라인업 실화냐고? 응, 실화였어. 내가 저기서 내 눈으로 봤어. 크리스마스가 다가오고 있었고, 저 포스터에 등장한 저 모두가 그 좁은 홍턴에 모여 사람들과 소셜을 췄어. 전국에서 바차타 좋아하는 사람들이 다 모여들어, 누구든 가리지 않고 손에 잡히는 대로 미친듯이 춤을 췄지. 아직까지도 바차타 마라톤과 함께 가장 기억에 남는 행사야. 하지만 소셜 행사와 별개로 가장 기억에 남는 배움을 남겨주신 분이 바로 코르케 선생님, 그리고 주디스 선생님이시기도 해. 이 분들이 이 번에 세 번째로 한국에 오셔. 딱 5년 만이야.
바차타 센슈얼은 몇 살?
센슈얼 바차타의 역사가 얼마나 된 것 같아? 오피셜에서 몇 년 전 15년 됐다고 했으니 이제 약 20년 쯤 된 것 같아. 이 시작의 기준은 무엇일까? 코르케가 바차타를 시작한 것이 2001년 (살사는 1999년 즈음). 그러니까 코부지가 바차타를 시작한 대략 그때 쯤이 아마 기준점이 되는 것 같아. 주디스가 코르케와 파트너를 시작한 건 2008년. 이 기준으로 보면 14년이 되는데 이것보다는 이전으로 보는 것 같더라고.
그러니까 이런 저런 추정을 통해 대략 센슈얼 바차타의 나이는 20살보다는 약간 어린, 수능을 앞둔 고딩 2, 3년차 즈음이라고 보고 있어. (창시자가 이런 것도 딱 정해주면 좋겠어!)
아뭏튼, 거의 20년이면 꽤 긴 시간이지? 그런데 이 바차타 센슈얼의 역사는 어떻게 시작된걸까? Creator of Bachata Sensual이라고 불리는 코르케 선생님은 대체 어떻게 그 굳건한 도미니칸의 적자를 스페인으로 귀화시키는 매직을 발휘하신 걸까? 오늘은 근대 바차타 유니버스에서 벌어진 가장 중요한 사건, 바차타 센슈얼이라는 거대한 세계관의 시작점에 대해 알아보려고 해. 아마 그래야만 우리가 곧 만날 코르케가 누구인지 제대로 이해할 수 있을 것 같거든.
Bachata Sensual = Bachata Made in Cadiz
바차타 센슈얼의 애칭이 있다면, 그건 Bachata Made in Cadiz(카디즈산 바차타)일거야. 카디즈는 스페인 남서부, 안달루시아 지역의 매우 아름다운 고대 항구도시. 여러 역사적 사건들이 있었고, 해변을 둘러싼 카디즈 성벽 안쪽으로 구시가의 골목들이 구불구불 멋지게 펼쳐져 있는 아름다운 곳인가봐. (글로만 배운 1인)

카디즈의 아름다움은 다니 제이와 마리오 바로가 함께 부른 <1+1>의 뮤비를 보면 알 수 있어. 이런 곳에서 바차타 쇼츠 찍으면 조회수 백만 찍겠지?😆
코르케가 주관한 전 세계 바차타 센슈얼 인스트럭터를 위한 행사인 센슈얼 위크(Sensual Week) 행사의 홈페이지도 기억에 남아. 메인에 떡하니 카디즈의 바다를 끼고 둘러쳐진 성곽의 풍광을 깔아놨었지. 바차타 센슈얼에 대한 환상을 마구마구 불러일으키는 너무나 멋들어진 이미지였어.

<Bachata Made in Cadiz>라는 행사는 아직도 계속 되고 있어. 지정학적 위치상 가장 인기있는 행사는 아니지만, 모든 앰버세더(바차타 센슈얼의 1티어 댄서들)들이 다 모이는 가족의 고향 명절 행사같은 것 같아.

그러니까 뭐랄까, 카디즈는 기독교의 예루살렘, 이슬람교의 메카 같은 곳인거지. 왜냐면 코르케가 거기 출신이고 거기에서 바차타 센슈얼이 탄생했으니까. 이제는 같은 남부, 안달루시아의 대표 도시 세비야가 메인이 됐지만, 바차타 센슈얼의 코어는 역시나 카디즈. 그리고 카디즈를 중심으로 한 남부 지역이야.
오죽하면 처음으로 바차타 대회에 출전하려고 세비야로 온 사라(그래, 우리의 그 사라 파네로!)가 행사에 모인 남부 출신 댄서들(루안 등등)을 보면서 아싸의 위기감을 느꼈고, 그 상황이 자신의 타고난 수줍음을 극복할 수 있었던 계기가 되었다는 인터뷰를 했을 정도니 말이야.
마르코 사라의 그루포 엣센시아 나와바리^^;는 북부 마드리드 지역이거든. 사라는 그보다 더 북쪽인 살라망카 출신이고. 이렇게 사라가 지역적 소외감을 느낄 정도로 카디즈와 세비야, 스페인 서남부 지역은 바차타 센슈얼의 핵인싸 지역인거지.

게다가 우리가 애정하는 다니 제이와 마리오 바로, DJ Khalid, DJ Husky, DJ Pakinho(파키뇨) 등등도 모두 이 지역 출신이지. 내가 세비야 군단이라고 부르는 바로 그들. 이들이 같은 동네에서 센슈얼 댄서 친구들과 짝짜쿵을 하면서 그 춤에 가장 걸맞는 최적의 음악을 제조해 내는 거야.
음악이 만들어지면 다시 같은 동네 댄서들이 뮤비를 찍고, 해외 워크샵에서 그들의 음악을 틀고 데모를 해. 그러면, 우리는 또 저게 뭐야? 하면서 그 음악을 듣게 되고 그래서 다시 그 곡과 가수의 인기가 높아지는 독점적인 확산 구조. 춤과 음악의 완벽 케미를 바탕으로 한 꿩먹고 알먹고지.
그 대표적인 결과물이 코르케 주디스가 떡하니 피처링으로 제목에 들어가 있는 다니 제이의 <Bachata Sensual>. 이 곡은 바차타 센슈얼의 애국가이자 절절한 헌정송이라 보면 되겠지.

심지어 뮤비 커버에 코주의 캐리커처와 BS의 공식 로고도 들어가 있어! 가사의 내용은 거의 코르케의 마음이야. (코르케가 가사를 썼거나 아니면 코르케가 읊어준 컨셉을 작사가가 옮겼거나…)
영감(inspiration)의 바차타, 너는 전 세계를 날라다니며 안달루시아의 깃발을 휘날린다.
도미니칸 사람들이 이 가사를 들으면 얼마나 기분이 나쁠지 ㅎㅎ
물론 지금은 전 세계 폭넓은 지역에서 다양한 특색으로 분화된 센슈얼 댄서들이 활동하고 있고, 특히 코로나 시국을 겪으며 화려하고 신나는 영상과 비주얼로 지명도를 높인 마드리드의 맹호 <그루포 에센시아>가 주름잡고 있지만. 그래도 우리가 궁서체로 바차타 센슈얼을 말할 때 그 원천은 Bachata Made in Cadiz인거야. 마치 도미니칸 바차타의 성지가 도미니카 공화국, 산토 도밍고인 것 처럼.
센슈얼의 시작 — 음악이 기폭제가 된 춤의 변화
코르케는 카디즈 출신이고 여기서 웨이터를 했었대. 평생 카디즈를 떠나지 않을 줄 알았다고 했지. <Dance with Me>라는 영화를 보고 LA 스타일 On1 살사를 시작했다고 말이야.

그럼 그 이후의 이야기는 뭘까?
코르케는 똑똑한 사람이었나봐. 살사를 배운 얼마 뒤 곧 살사를 가르치기 시작했대. 그런데 코르케는 바차타가 좋았대. 더 정확히는 바차타 음악이 좋았대!!! (꺅- 나도 나도!) 코르케의 말을 직접 들어보자.
"전 늘 바차타 음악을 사랑했어요. 특히 매우 소프트한 음악들을 즐겨 들었어요. 내가 좀 더 어렸을 때 부모님은 늘 바차타를 듣고 계셨어요. 전 그게 바차타인 줄도 몰랐지만 그 음악들을 사랑했죠. 난 그 음악들이 늘 내 안에 있다고 느꼈어요. 언제나 영감이 되어 준 건 후안 루이스 게라예요. 그는 거의 볼레로에 가까운 매우 느린 바차타를 불렀어요."
그러니까 코르케는 바차타 춤에 앞서 바차타 음악을 먼저 접했던거지. 마침 그 때는 바차타 음악의 패러다임이 완전히 바뀌고 있을 때였어. 후안 루이스 게라가 나왔고, 아벤투라가 시작되었던 시점이었지.

바차타 음악의 역사를 바꿨다고 알려진 후안 루이스 게라의 <Bachata Rosa>는 BPM 116. 평균 BPM 130을 훌쩍 넘기는 이전의 도미니칸 바차타와는 너무나 다른 류의 로맨틱하고 아름다운 바차타를 후안 루이스 게라는 불렀지. 그리고 그렇게 모던 바차타의 시대를 열었어.
문제는! 음악은 이렇게 바뀌어 가고 있지만, 춤은 그대로라는 거였어. 여전히 사람들이 추는 바차타는 남녀가 손을 잡고 원, 투, 쓰리 그리고 힙을 치는 포의 단순한 도미니칸 스타일이었던거지. 여친의 해외 투어를 응원하러 스페인에서 한국까지 날라온 로맨틱 가이 코르케가 그 흥겨운(방정맞은?!) 베이직 스텝에 만족이 됐겠냐고. 기존의 바차타 춤과 이런 새로운 음악들 사이에는 생긴 갭. 바로 코르케는 이 틈을 포착한 거야.
"나는 그 때 바차타 베이직 스텝밖에 몰랐죠. 원, 투, 쓰리 그리고 힙. 그런데 그의 음악은 내가 좀 더 파트너와 가깝게 붙어서 춤을 추고 싶게 만들었어요. 파트너를 붙잡고 리듬을 느끼며 조금 더 느린 속도의 무브먼트를 하게 말이죠. 아니, 그냥 몸에서 자연스럽게 그렇게 되었어요."
코르케는 생각하는 사람이었어. 음악은 바뀌어 가는데, 춤은 바뀌지 않은 상황에서 바뀐 음악에 맞는 새로운 춤을 고민하기 시작했던거지. 더 로맨틱하고 아름다운 멜로디에 어울리는 춤. 그리고 스페인 사람들의 특출난 무용적 능력을 백퍼 발휘할 수 있는 무브먼트가 중심이 되는 춤을.
이후에도 코르케에게 음악은 매우 중요한 진화의 모티브가 돼. 물론 모든 댄서에게 그렇겠지만, 코주에게는 조금 더 특별한 것 같아. 심지어 공연에서도 안무 창작보다 더 어려운 것이 곡을 고르는 것이라고 고백하시거든.
"어떻게 크리에이티브한 무대를 만드는가… 많은 사람들이 물어보는 질문인데요. 사람들이 상상하는 것과 다르게, 정말 많은 시간이 듭니다. 정말 많은 시간을 함께 보내며 질문해요. '우리가 뭘 하고 있는 거지?' 안무를 만들었다가 그게 좋지 않으면 버리고, 또 바꾸고… 수없이 바꾸죠. 가장 어려운 부분은 우리를 만족시키는 음악을 찾는 거예요. 우리는 음악을 듣고 사람들에게 하고 싶은 이야기를 만들어내요. 이건 매우 어려운 일이예요. 왜냐면, 처음에는 우리가 어떤 이야기를 하게 될 지 모르거든요."
그리고 나중에 코르케는 음악까지도 실험하셨어. 아래 공연 <Cai>는 고향 카디즈에 헌정하는 무대야. 바차타가 아닌 플라멩고 음악에 맞춘 바차타 공연. 주디스는 중간에 플라멩고도 춰. 새로운 음악에 새로운 춤을 도입한 것을 넘어서 이제는 음악 자체를 바꾸어 보는 실험을 하신 거지. 카디즈라는 자신의 정체성을 바탕으로 말이야. 이런 실험정신이 바로 코르케야!
춤과 음악의 갭을 포착하고, 그것을 메꾸고, 춤을 실험하고 음악도 실험하면서 끊임없이 새로운 도전을 해 나갔던 개척자 코르케! 그 속에서 자신의 근원적인 정체성의 스토리텔링을 담았던 우윳빛깔 코르케🙌🙌🙌
바차타 센슈얼은 이렇게 원래 있던 것을 그대로 답습하지 않고, 자기의 생각을 했던 한 사람에 의해 시작되었어.
"그건 아마 어떤 특별한 감상을 불러일으켰을 거예요. 카디즈는 우리의 도시기 때문에 매우 특별했거든요. 이 음악은 카디즈, 특히 우리가 살았던 곳과 아주 가까이 있던 장소에 대해 이야기 하고 있어요. 카디즈에 사는 사람이 된 듯 한 느낌을 받는 게 중요했어요. 바다의 냄새와 플라멩코… 이 안무에서는 우리의 고향의 요소들을 가져오려고 했어요."
2022년, 또 다시 음악이 바뀌고 있어. 이 새로운 갭은 누가, 어떻게 메꾸게 될까. 누군가 춤으로 우리의 고향에 대해서 말할 수 있을까?
원리의 탄생 — 바차타의 특이점, 어떻게 할까에서 어떻게 하게 만들까로!
이렇게 새로운 음악이 자연스럽게 무브먼트를 불렀고, 코르케는 이걸 사람들에게 가르치기 시작했대. 코르케는 좋은 선생님이었나봐. 살사를 배우던 사람들이 와서 바차타도 배우고 싶다고 했다는 거야.
"처음에 난 살사를 추고 가르쳤는데 바차타도 추고 싶었어요. 바차타가 좋았거든요. 사람들이 와서 물어보기 시작했어요. 코르케, 왜 바차타는 안 가르쳐? 난 대답했어요. 바차타는 베이직 몇 개 밖에 몰라요. 그러고 나서 가르치기 시작했어요. 처음에는 웨이브를 가르쳤는데 사람들이 그게 좀 모호하다는 거예요. 그래서 새로운 무브들을 만들어야 했어요."
코르케가 늘 하는 말이 있어. 바차타 센슈얼은 자신의 무지(ignorance)에서 탄생했다고. 만약 코르케가 바차타에 대해 아는 게 많고 가르칠 것도 많았다면 그냥 그걸 전달하느라 바빴을거야. 하지만, 쥐뿔 아는 거 1도 없이 갑자기 동네 바차타 쌤이 된 무지한 코르케는 자기가 가르칠 것을 직접 만들어 내야 했지. 그리고 기회를 챈스로 삼아 자신이 애정하는 새로운 음악과 맞는 새로운 스타일의 무브먼트들을 고안해 내기 시작한 거야.
그런데 말입니다…. (그알 스타일로) 수업시간에 자신이 고안한 무브를 가르치던 와중에 한 학생의 질문을 받게 돼. 그리고 난 이 질문의 순간이 바차타 센슈얼의 탄생에서 가장 중요한 순간이 아니었나 싶어.
어느 날 레슨에서 학생이 물어봤어요. "코르케, 당신이 만든 무브를 여자에게 시킬려면 어떻게 해야 되요?" 할 말이 없어서 "이 무브를 어떻게 하는지는 아는데, 여자에게 시킬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 지는 모르겠어요. 내일 다시 말해줄께요." 그리고 그때부터 모든 테크닉 가이드를 개발하기 시작했어요.
와우!!!!!! 그래 이거야. 어떻게 할까에서 어떻게 하게 만들까로 질문이 바뀐 순간, 마치 천동설에서 지동설로 전환하듯 바차타 패러다임의 축이 바뀐 순간. 바차타의 특이점.

어떻게 무브먼트를 잘 할까가 아니라 어떻게 하면 저 무브먼트를 만들 수 있을까로 질문이 바뀌었어. 바차타 역사에 새로운 질문이 던져진 순간. 난 이 순간이 진정한 바차타 센슈얼의 시작점이라고 봐. (그래서 난 저 학생이 저 질문을 한 날을 바차타 센슈얼이 시작된 날로 지정하고 싶어. 만약 나에게 정할 권리를 준다면 말이야!)
그리고 생각하는 사람, 코르케는 또 다시 생각을 시작한 거지. 고민하고 또 실험했을거야. 새로운 음악에 맞는 무브가 이런 것들이긴 한데, 결과적으로 저 무브를 하게 만들려면 상대방은 어떤 동작을 해야 하지? 이것이 바로 우리가 지금 배우는 '원리'의 시작점인거지.
온다(웨이브), 더블 타임(남자의 스텝 체인지), 롬뽀 델란떼(브레이크 포워드), 삔사(하체 블록), 빠세오(걷기), 바디롤, 메디아(라의 180도 턴), 슬라이드 등등 지금 우리가 하는 수많은 무브먼트의 구동 원리들이 저 날부터 정리되기 시작했을거야. 그 다음 날, 질문을 한 학생에게 말해줄 것을 밤새 고민했을 코르케의 머리 속에서부터.
새로운 음악은 새로운 무브를 만들었고, 원리는 그 무브를 하게 만드는 메카니즘을 만들었어. 이 두 가지가 합쳐져서 소위 지금 우리가 말하는 바차타 센슈얼의 펀더멘털(fundamental)이 된 거겠지. 그리고 그렇게 바차타 센슈얼은 시작된거야.
그리고 이 펀더멘탈은 지금도 계속 진화/발전 중에 있어. 코르케는 생각을 멈추지 않는 분이시거든. 최소한 내가 마지막으로 봤을 때 까지는. 2018년 마지막으로 오셨을 때 수업시간에 하신 말씀이 기억이 나. 여자를 업 시키는 방법을 설명하면서 지난 번에 왔을 때는 팔을 들라고 했는데 좀 더 해 보니 그렇게 하지 않아도 되더라고. 팔의 위치를 바꾸지 않고 엄지 손가락으로 여자의 손목만 콘트롤 해도 업은 이루어진다고. 이렇게 우리도 계속 실험하고 진화하고 있다고.
그래서 코르케에게는 이 사람에게 더 배울게 있을까? 라는 질문은 안 해. 왜냐면 코르케는 이렇게 생각을 멈추지 않는 분이었거든. 그렇게 실험과 고민을 거듭하는 사람이 최소한 지난 20여년 동안 쌓은 엑기스를 전달받는 것 만으로도 충분하니까.

참 어려웠어. 나는 신나게 (막~) 춤이 추고 싶은데, 리드를 받고 그 리드에 따라 그 리드가 의도하는 동작을 수행하는 것을 춤이라 한다니. 이게 춤이야??!! 너무 답답하고 모르겠고 그랬어. 반대로 어딘가에는 내 춤이 추고 싶고 내가 음악을 표현하고 싶은데 앞에 있는 여자를 움직이게 만드는 것을 춤이라 한다니, 라고 괴로워하는 로분들도 있을지 모르겠다.
하지만 바차타 센슈얼을 춘다는 것은 *일단은* 질문을 바꾸는 것이야. 어떻게 무브를 할까에서 어떻게 무브를 하게 만들까로(로). 그리고 여자(라)는 기다리는거야. 남자가 시키는 무브를 할 수 있는 몸을 만들어 놓고 말이야. 왜냐면, 코르케느님이 그렇게 정해놓으셨기 때문이지 :) (물론 그 후엔 이단도 있고 삼단, 사단… 백만이십칠단도 있겠지만~~)



그리고 코부지가 늘 강조하는 것. 이것은 sexual이 아니라 sensual이라고. 아무리 남녀의 거리가 가까워졌다고 해도, 맨 처음부터 모든 동작은 상대에 대한 존중(respectful)을 최우선으로 고려하여 설계되었다고. 맨 처음 이걸 만든 사람이 한 말이야.
세계관의 확산 — 브랜딩과 방법론
이렇게 원리까지 정립한 코르케. 하지만 당연히 코부지는 여기서 멈추지 않았지. 그 다음 질문은 이거였어. 이 원리에 입각한 새로운 춤을 더 넓은 세상에 확산시키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그래서 코르케는 이 춤을 추는 원리 뿐만 아니라 이 원리를 가르치는 방법론(methodology)까지 정립하셨지. 이것이 코르케의 탁월함이야.
"저는 제 자신의 정체성을 댄서를 위한 인스트럭터로 보고 있어요. 저에게 중요한 것은 사람들이 변화하는 것, 그리고 그들이 어떻게 진화해 나가느냐 하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아예 처음부터 시작해서 이제는 세계적인 댄서가 되기도 했어요."
그렇게 하기 위해 교과서도 편찬하시고, 전도 유망한 탑댄서들을 모아 앰버세더로 지정했고, 티칭 코스도 만드셨지. 루이스 안드레아, 키케 나히르, 키코 크리스티나 같은 흥행력 있는 1티어 댄서들이 바차타 센슈얼의 선교자가 되어 전 세계 각 지역을 개척했고, 그 아래로는 티칭 코스를 만들어 비기너 인스트럭터를 모아 교과서를 쥐어주고 가르치는 방법을 가르치고 수료증을 발급하셨어.
그들은 인증받은 센슈얼이라는 블루 오션의 강사로 각지에서 인지도를 쌓고 수업을 했지. 그럴 수록 바차타 센슈얼은 점점 더 전 세계로 퍼져 나갔고. 새로운 춤과 새로운 사람들의 윈윈 구조를 만드신 거야.




한편, 비즈니스 맨으로도 훌륭하셨지. 바차타 센슈얼을 브랜딩해서 로고에서 각종 굿즈까지 만들어 파시고 노래도 만들고 행사도 열고 워크샵도 다니고… 팀 센슈얼을 만들어서 전 세계에 안무도 파시고. 사업가 기질이 아주 충만하신 분 같아. 제품 개발에서 비즈니스 세일즈까지 할 수 있는 건 다 하신 것 같아.
그리고 성공하셨지! 돈을 얼마나 버셨는지는 모르지만, 어떤 분야의 전 세계 사람들에게 자신이 만든 것을 전파하셨으니 말이야. 진짜 이 정도면 탁월한 창업자 맞지? 결국은 기존의 바차타와는 전혀 다른 이질적 스타일을 도입해 도미니칸이라는 거대한 교회를 넘어 바차타 세상을 평정하셨어. 늘 트래디셔널 바차타의 정수를 존중하고 지켜낸다고 말하면서. 이건 도미니칸에 대한 리스펙이자 바차타 센슈얼의 정통성에 대한 주장이기도 해. (도미니칸이 아니라 트래디셔널이라는 표현을 쓰시지만 말이야)
그리고 사실 그랬기 때문에 지금까지 센슈얼도 살아있고, 도미니칸도 살아있고, 또 다른 변종들도 살아있는 거야. 바차타는 도미니칸 전유물이 아니라 더 큰 우주가 되어버린 거지.
2022년 지금. 코르케가 20년 전에 시작했던 물결은 이제 전 세계 거의 모든 대륙에 도달해 있어. 매주 마다 어디선가는 누군가가 그의 방법론으로 누군가에게 센슈얼을 가르치고 있어. 영어로, 스페인어로, 일본어로, 한국어로, 포르투갈어로, 중국어로, 러시아어로…
코르케는 춤을 넘어서 문명을 전파한 거야.
그리고 이제 한국에서도 센슈얼은 'ㅋ'자 하면 떠오르는 우리의 춤이 되어버렸어.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난 그 정도로 느껴진단 의미^^)
코르케가 이 번에 다시 한국에 온 이유가 뭘까. 혹시나 해서 인터뷰 요청을 했지만, 사실 이미 알고 있어. 그냥 다시 한 번 보고 싶으신 거야. 자신의 방법론이 자리잡혀 있는 이곳. 한국의 센슈얼들이 자기들의 춤을 춤으로 존중하고, 자신들의 파트너를 존중하면서 음악과 대화하는 것을 보고 싶으신 거야. 그리고 또 한 번 뭔가를 배워가시고, 또 한 번 뭔가를 실험하고 싶으신 거겠지.
코르케라는 사람을 알게 되었던 모든 춤추는 사람들에게, 그리고 이 글을 읽고 있는 당신에게: 다시 한번 당신은 어떻게 하고 있어? 라는 질문을 던져보자. 그 질문이 바뀌는 순간을 기다려보자. 지금까지와는 다른, 어떤 새로운 세계로 향하는 문이 열릴 것 같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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